sic parvis magna
31살 비전공자의 토스뱅크 서버 개발자 신입 합격 후기 (feat. YIL 2025) 본문

정말 열심히 달렸고, 달린 길의 끝에는 새로운 출발선이 있었다
겸손해지기 위해 이제까지 달렸던 길을 다시 회고하기 위한 첫 번째 포스팅
2025년 이전의 나는...
전공은 건축이요, 직무는 교육업계였던 나는
사실 컴퓨터는 게임용 도구로만 알던 사람이었다
속내는 뭔가 치열하지 않고 인정만 좇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프론트엔드 부트캠프를 우연히 접하며 개발에 진입했고
개발자가 되려는 계기를 지닌 경험을 이어 백엔드 개발자를 꿈꿨고
몇 번의 좌절 끝에 다시 재시도하고 이제야 시작에 다다르게 됐다
비전공자인지라 전공자 분들을 비롯해 먼저 시작하신 분들의 개발자가 되기 위한 고민과 시간의 깊이는 내가 감히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서 언제나 경청하고 배우는 자세로 임했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백엔드 부트캠프를 마무리하고, 학습을 이어가며 2025년을 마주했다.
차가운 취업시장 속 무기 갖추기
당시 사이드 프로젝트 경험은 많이 갖췄지만, 그 외의 실무에 준하는 경험이나 자격증과 같이 서류에 적었을 때 객관적으로 입증이 가능한 내용은 없었다. 연속되는 서류 탈락의 주요 원인을 곰곰히 생각했고 이내 아래와 같이 결론내렸다.
나만의 특출난 무기가 없다
꽤나 힘들겠다고 생각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달리기를 준비했다.
1)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취득
흔히 SI 같은 곳에서 정처기 자격증을 중요시하지 스타트업이나 자사 서비스업 기업들은 자격증을 안본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 이 의견에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특히 비전공자라서 더더욱 그랬다.
왜냐하면 나는 비전공자인데, 전공자 분들은 대부분 정처기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로 취준을 하시는데 내가 뭐가 잘났다고 자격증 없이도 되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마침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해보며 기술이 아닌 원론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던 참이었다.

그렇게 올해 2025년 2월, 정보처리기사 필기를 합격했고 재수 끝에 2025년 9월 정보처리기사 실기를 합격, 최종적으로 2025년 9월에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단순히 자격증을 위한 암기가 아니라, 내가 개발을 학습하며 어렴풋이 접했던 내용과 공통점이 뭐였는지 고민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2) 학점은행제 신청
한창 더워지기 시작하던 늦은 5월, 정보처리기사 실기를 준비하던 와중에 대학 친구로부터 학점은행제를 알게 됐다. 친구는 전문직 자격증 응시조건을 위해 경영 전공을 신청한 경험을 공유해줬고, 거기서 관련 자격증이 이미 있으면 4년제 졸업자는 요구학점 절반 가까이는 충당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마침 원론적인 개발 지식에 대한 보충 필요성을 느끼기도 했고, 당시의 나는 정처기 곧바로 따겠지(...)라는 착각에 학점은행제 컴퓨터공학 전공(학사 타전공)를 덜컥 신청해버렸다. 결과적으로 9월에 자격증을 취득해 학점에 추가할 수는 있었다.
물론 학점은행제를 수강하고 수료까지 간다고 해서 내가 전공자가 된다는 오만한 생각은 결코 아녔다. 원론 지식들(운영체제, 네트워크, 데이터베이스, 알고리즘 등등...)에 대한 대학 과정의 커리큘럼을 확인해보며 내가 추가로 더 공부할 방향을 진단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현재는 전공과목 12학점을 듣고 학점인정을 대기하며 다음 학기에 어떤 과목을 수강할지 고민중에 있다. 후술할 프로젝트가 특히 운영체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서 운영체제 관련 과목을 들을까 싶다.
3) 공모전 프로젝트 & 수상
개발자가 되기 위해 가진 나의 가치관은 기여였다. 내가 구현한 서비스가 헛도는 코드 덩어리가 아닌 진정 누군가에게 기여할 수 있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해온 시간이 많았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공모전이라 생각했다.
마침 새만금개발청에서 공공데이터 활용을 주제로 한 공모전 개최 소식을 접했고, 외주 프로젝트 당시 알게된 UX/UI 디자이너 분과 기획을 해보며 프론트엔드 개발자 인력을 구인했다.
사실 프로젝트 과정이 쉽지 않았다...ㅎ 중간에 인원이 탈주하질 않나, 생각보다 수집된 데이터는 분석 가치가 없질 않나 등등... 그럼에도 내가 팀 구성부터 기획까지 전부 관여하는 첫 프로젝트였기에 끝까지 책임을 지며 나를 믿고 합류해준 팀원들에게 성과를 안겨주고 싶었다. 다행히 스터디 팀원분의 도움으로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했고 예선과 발표를 거치며 장려상이라는 수상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이기도 한데, 백엔드 트러블 슈팅을 기술 도입이 아닌 원론 지식(특히 운영체제)의 범주 내에서 코드 리팩토링만으로 퍼포먼스를 끌어냈고, 모든 과정에 관여하며 힘들었지만 끝까지 책임지고 성과로 이어진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4) 전국단위 IT 연합 동아리 참여
인턴도 금턴인 시즌(ㅠㅠ)이라 특히 실무 경험에 대해 목이 말랐다. 그래서 인턴에 그나마 준하는 동아리 활동을 탐색해봤다. 유튜브와 포털 검색을 통해 디프만, 넥스티즈, 메쉬업, YAPP 등의 다양한 동아리를 알게 됐고 그중 신청 시즌이 가장 가까웠던 DND에 지원 서류를 넣었다.

유달리 추운 12월이 되고, 동아리 합격 메일을 받아서 DND 14기에 합류하였다. 그렇게 만난 현재 팀원들과 열심히 우리 서비스를 위한 기획과 기능 정의 중이다. 아쉽게도 서류에 작성하진 못했지만 회의를 시작해보며 내가 개발자가 된 계기를 다시 되돌아보면서 열정을 자극할 수 있었고, 앞으로 좋은 기억으로 남을 듯하다.
토스뱅크 채용 프로세스
위의 경험들 외에도 많은 경험들을 쌓으며, 정말로 의미있는 개발자가 되기 위한 밑바탕을 쌓고 이를 서류에 녹여내기 위해 수많은 고민과 회고를 반복했다. 정말 거짓말 안하고 이력서는 50번 넘게 갈아엎었고 포트폴리오도 지원 회사별로 전부 따로 만들어 PDF로 저장하는 등... 경험 갖추기보다 이를 문서화하는 작업이 더 힘들었다. 덕분에 개발일지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기도 했다.
그렇게 한파가 일찍 다다른 2025년 11월, 토스뱅크 여신사후관리 서버 개발자 파트에 지원하였다.

1) 서류 전형
지원하기 전, 내가 지원하는 파트와 직무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봤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싶은건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그 기여하고자 하는 역량과 경험을 비롯한 나의 의사표현이 최대한 가독성 있게 내 서류에 잘 녹여져 있는지.
그렇게 지원 서류를 넣었고, 약간의 기다림 끝에 추위가 심해지는 2025년 12월 서류합격 메일을 받으며 본격적인 면접 전형으로 진입하게 됐다.

2) 사전인터뷰 & 직무인터뷰
면접은 총 3번 진행됐는데 그중 1, 2차가 기술직무와 관련된 면접이었다.
정확히는 나의 서류에 대한 이해도를 확인하는 사전인터뷰와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 및 기술적 역량에 대한 이해도를 검증하는 직무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진행 프로세스는 토스에서 공개하는 프로세스와 차이점이 없었다.
먼저 사전인터뷰가 짧게 진행됐으며, 결과는 곧바로 다음날 메일과 유선으로 안내되면서 본격적인 직무인터뷰 단계가 진행됐다. 사실 토스에 도전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서류 탈락이었고 최고로 높게 간 것도 직무인터뷰였어서, 해당 단계의 어려움과 악명(?)에 대해서는 이미 경험한 바가 있었다.

직무인터뷰 일정 선택 옵션은 상당히 넓었다. 12월 말부터 1월 중순까지 있었는데, 알고보니 토스는 12월 말이 오프윅 기간이라 이 기간에는 채용 프로세스가 중단돼서 그러했다. 처음에는 기간을 길게 잡고 준비를 꼼꼼하게 할까... 라는 생각에 가장 늦은 날짜를 선택하려 했지만, 이내 직무인터뷰는 공부를 해서 임하는 면접이 아니라 평소의 기술의사결정능력이 밑바탕이 되는 면접이라 생각해 최대한 빠른 날짜로 선택하면서 12월 말로 직무인터뷰 일정이 정해졌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준비기간이었지만 다시 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철저히 분석하고 직접 펜으로 그어가면서 내가 미숙한 개념들을 보완해나갔다. 그러면서 내가 당시 결정했던 기술전략을 곰곰히 회고하며 뭐가 옳았고 뭐가 아쉬웠는지 정리해갔다.

그렇게 대망의 면접날, 3명의 면접관님들이 들어오셔서 화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고 정말 혼신을 다해서 면접관님들의 날카로운 질문들을 대답하고, 또한 역으로 내 생각을 어필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며 약 2시간 가량을 진행하였다.
개인적으로 모든 프로세스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단계가 아니었나 싶다. 단순히 암기처럼 생각한 기술이론에 대해 점검을 넘어서 그 사고과정까지 낱낱이 드러내게 하는 면접관님들의 높은 질문수준에 당황과 감탄을 같이 하며 꼭 토스뱅크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지를 다시 다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2시간을 꽉 채운 면접을 마무리하고 너무 탈진해서 곧바로 잠들 정도로 정말 열심히 임했다. 면접이 끝나고 내 모든 걸 쏟아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며 아쉬움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적어도 모르는 걸 모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가 아는 한에서 최대한 정답이 아니어도 최선에 가까워지는 전략을 도출하려 했다. 그래서 아쉬움보다는 보완 의지가 더 크게 느껴졌던 단계였다.
그렇게 면접을 보고 이틀 후, 유선으로 직무인터뷰 합격 문자가 왔고 곧이어 문화적합성 인터뷰 안내 메일이 도착하면서 토스뱅크 합류의 마지막 단계를 앞두게 됐다.
3) 문화적합성 인터뷰
사실 토스뱅크 말고 다른 기업들의 면접은 기술직무와 컬쳐핏이 같이 합쳐진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컬쳐핏만을 다루는 면접은 익숙하지 않았다. 직무인터뷰가 난이도가 가장 높은 인터뷰였다면 문화적합성 인터뷰는 나에게 가장 낯선 인터뷰였다.
그래서 우선은 토스의 문화적합성 인터뷰 후기들을 찾아보며 어떤 경험인지를 파악하려 했으나 합격 사례나 불합격 사례나 전부 공통적으로 자신의 경험에 솔직하라는 교훈적 후기들만 있었다. 매우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면접 일정은 2026년 1월 중순으로 잡게 됐고, 오프윅 기간이 겹치며 생각보다 꽤 긴 준비기간을 확보했지만 오히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평생을 학습에 익숙하게 살아온 내가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것이 무언가 부끄럽기도 하고 자꾸만 편집하려 하는 게 스스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자꾸만 나태해질까 겁이 났다. 뚫지 못할 거라 막연히 생각한 직무인터뷰를 통과했다는 사실 자체가 나한테 감격스러웠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안주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정상을 찍는 것과 중턱을 찍는 것은 다른 법. 이내 다시 채찍질을 하고 귀를 닫아 나 자신에게 집중해보며 재야의 종소리 없는 새해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혼자서 나의 경험과 장단점 등, 나 자신을 내가 진단하려 하는 것이 뭔가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같이 스터디를 진행한 팀원 분,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만난 분, 링크드인을 통해 토스뱅크에서 근무하시는 분 등등 많은 분들께 나 자신을 공유하고 솔직하게 여쭤보며 메타인지의 도움을 얻었다.
그와 동시에 경험 정리는 말 그대로 경험에만 그쳤고, 이를 추상화해 나의 가치관과 개발자로서 이루고 싶은 점의 일관성과 공통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를 반복했다. 이와 더불어 내가 꼭 면접관님께 전하고 싶은 나의 생각들도 정리해보며 면접 준비를 마무리하고 대망의 면접일이 다가왔다.

문화적합성 면접은 약 1시간 반 가량 동안 일대일로 진행됐다. 중간중간 면접관님이 던지신 아이스브레이킹 식의 질문도 곁들여졌지만, 본격적인 질문들 하나하나가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게 하는 질문이었다. 내가 스크립트마냥 준비한 내용들도 정말 진심일까를 다시 고민하게 하는 질문들도 많았고, 내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경험에 대해 파고드는 질문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의 생각과 개발자로서의 가치관, 그리고 이를 어떻게 토스뱅크 여신사후관리 파트에서 활용하고 기여할 수 있는지를 최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녹여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말뿐만이 아닌, 관련된 경험을 곁들이며 내 진정성을 면접관님께 전달드렸다.
그렇게 1시간 30분을 살짝 넘기며 면접이 끝났다. 스터디카페에서 나서며 드는 생각은, 메타인지의 중요성이었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하기 위함이 아닌, 나 스스로의 반성에 대한 기준 확립의 시작이 곧 나 자신에 대한 인지와 인정이라는 생각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며 토스뱅크 지원 및 면접 프로세스를 마무리했다.
4) 토스뱅크 최종 합격
면접 후 하루가 넘게 지나도 연락이 없어서 처음에는 의연한 척하며 떨어졌다 생각하고 애써 신경쓰지 않으려 했지만 모든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진심이었고, 정말 모든 것을 쏟아낸 과정이었다.
그렇게 이틀 후 점심, 채용담당자님께 유선으로 최종합격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불합격 안내로 알고 덤덤하게 보려고 했는데 최종합격 안내라는 사실에 몇 번이고 재확인하며 직접 전화로 확인까지 받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 곧바로 나를 위해 매번 기도해주시고 걱정해주신 부모님께 연락드렸다.

구글 검색을 하면 나오는 합격자들의 Ready for Toss 문구의 메일을 나도 받았지만, 아직은 얼떨떨하고 꿈인듯 하다. 과분한 선물이자 나 자신을 다듬기 위해 새롭게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한다.
나는 신입이기 때문에 별도의 레퍼런스 체크 없이 처우협의 단계로 넘어가 입사일 확정 이후 최종합격 안내를 메일로 받았다. 그렇게 현재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1월, 나는 토스뱅크 입사를 약 2주 가량 앞두고 있다.
2026년의 나는...
누군가는 노력에 대한 보답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고 말해주지만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취업은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듯이, 분명 운이 많이 따라줬다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겸손해지려고 한다. 여전히 전공자 분들과 먼저 개발을 시작하신 분들에 비해 나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여기며 스스로 상기하려 한다.
그래서 2026년의 나는 여전히 노력하고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개발자가 되려고 한다. 토스뱅크에 합류하면 분명 많은 것들을 익히고 배워야겠지만 내가 갖춘 역량으로 어떻게 기여할지도 끊임없이 고민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입사 전부터 어떤 것들을 갖출지 정리해보려 한다.
1) 코틀린 학습하기
직무 내용에 MSA 마이그레이션이 있다. 자바 레거시를 코틀린 기반으로 이전하기 때문에 코틀린의 심도 있는 학습이 요구된다. 코틀린은 문법은 간단히 다뤄봤지만 자바와의 매커니즘적 차이점, 바이트코드 변환 시의 취급 등에 대해서 깊게 학습해야겠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2) 영어 공부하기
단순히 어학 실력을 기르는 것이 아닌, 공식 문서 리딩과 개발자와의 의사소통 수단 확장의 목적으로 영어를 공부하려고 한다. 리딩은 어느 정도 되지만 여전히 번역기의 도움을 받고 있고, 스피킹과 리스닝이 무척 부족해서 이 점을 집중적으로 보완하며 영어 공부를 병행하려 한다.
3) 원론과 문제 정의 역량 기르기
여전히 개발자에게 중요한 능력은 문제 정의와 이를 위한 해결 역량을 다양하게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컴퓨터의 기본 원론에 가까운 지식들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려 한다. 문제 정의의 시작은 기술 도입이 아닌 원론 지식 범위에서의 인과관계 진단이 우선이므로(특히 공모전 프로젝트를 하면서 더욱 느꼈다) 이를 중요시하려 한다.
마치며
이 글은 나를 되돌아보기 위한 후기 겸 회고글이다.
모든 것이 어렵고 불확실한 시기고 나 역시 그러했고 어쩌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할 때, 더욱 절박하게 조급하게 공부를 해오면서 나 자신을 돌보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나같은, 아니면 나보다 더 절박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께, 당신은 생각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고 더 잘될 것임이 당연하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나를 자랑하려는 것이 아닌, 나 역시 겪어봤기에 내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픈 마음이다.
사실 저 말은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쉬어도 되지만, 안주하진 말고. 언제나 겸손하지만, 자책하지 말자고.